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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Film/Movie 2023. 8. 10. 22:59728x90반응형
아파트는 주민의 것
*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대한 배제하고 작성합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반포동에 들어올 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홍보문구로 집행했던 내용이다. (물론 이 내용은 여론에 뭇매를 맞으며 사과하고 삭제되었다.) 예상 분양가가 최소 100억 원부터 시작할 이 아파트는 가격부터 일반 아파트와 선을 긋고 시작한다. 주목할 부분은 이곳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수평적인 관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우리인 것 같지만 내면에서 욕망하는 것은 수직적 구조의 꼭대기에 자리 잡는 것이다.
한 순간에 대한민국이 초토화된다. 원인불명의 대지진은 수직으로 솟아있던 아파트와 빌딩들을 순식간에 평지로 눕혀버렸다. 단 한 채, 황궁아파트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 홀로 살아남은 황궁아파트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아파트가 아닌 생존의 수단이 되어버린다.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내 아파트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일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중에 아파트 주변에 거주하던 다른 사람들이 황궁아파트로 걸음을 옮긴다. 대기가 추위로 가득 찬 이 시점, 야외에 있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니까,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외부인들을 받아들인다.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파트 외부인들이 내부인처럼 행동한다. 바로 옆, 고급 브랜드 아파트였던 로열팰리스 사람들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인 황궁아파트의 주민들을 받아줬을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서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결정한다. 외부인을 모두 내쫓아내기로. 그리고 외친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최악의 순간에도 수직구조는 형성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유일하게 생존한 아파트, 사유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아파트 주민들은 손에 흉기를 쥐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외부인을 몰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떼어내도 언젠가 다시 나타나고, 없애도 어디선가 등장하는 존재.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는다는 빌어먹을 생존력을 지닌 하찮은 미물. 내 재산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생존을 하등 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위, 그들이 아래다. 치울 수 없는 정화조를 대신해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대변을 버리는 방법은 아파트 울타리 바깥으로 대변을 버리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수직구조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황궁아파트 내부의 수직구조화를 보여줌으로 남아있는 인류애마저 남루한 희망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외부인을 쫓아낸 아파트에서 이들은 전세와 자가보유로 내부인의 등급을 나눈다. 한정된 식량을 배분하는 과정에서도 수직적 구조화는 여실히 나타난다. 아파트를 지키는데 기여한 만큼 식량을 받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선천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불편한 이들과 후천적으로 기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주민들은 식량 분배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그뿐인가? 외부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보유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임승차라는 프레임이다. 외부인을 몰아내고 생존을 선택받은 황궁아파트의 내부인들은 그 안에서도 서열을 나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마냥 낯설지 않다. 아파트 브랜드로 자기소개를 하고, 전세로 사는 것이 놀림감이 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지 않은가?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그냥 살아도 되는 거예요?영화의 마지막, 살아남은 주인공(누구인지 밝히진 않는다.) 이 다른 일행을 만난다. 어느 날인가 수직으로 높게 솟아있었을 아파트. 이제는 수평으로 나란히 누워있다. 옆으로 쓰러져있는 빈 아파트에서 추위를 피하며 짐을 풀고 있는 일행에게 주인공은 물어본다. 여기에서 살아도 되냐고. 일행 중 한 명이 이야기한다. “그런 걸 허락 맡는 게 어딨어요.” 나는 이 주고받는 대화가 이중적으로 들렸다. 1) 당신들이 찾은 이 장소에 내가 덤으로 지내도 되나요? 그리고 2) 모든 것을 잃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으로 들렸다. 그렇다. 삶을 허락받을 이유는 없다. 살아있다면 그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하다. 개인의 살아감을 평가하고 허락할 수 있는 주체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집단 이기주의를 서늘하게 꼬집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난 커뮤니티 시설을 만든다. 세끼 식사도 아파트 안에서 할 수 있고, 운동과 문화생활, 쇼핑 등 아파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삶을 영위하는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아파트 울타리 안에서 나오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내 아파트만 남았고, 나머지는 대지진으로 스러진 것과 다를 바 없다. 저마다 황궁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No.1이라고 생각하지만 Only one 이기에 선택받았다고 최면에 빠진다. 그렇게 외부인을 우리가 감히 ‘허락해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치부한다.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등교하는 길이 민영아파트 안을 지나간다고 울타리를 세우고, 택배차량은 위험하니 차량을 놓고 배송하게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당장 우리의 모습이다.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영화는 꼭 n차 관람을 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이야기 외에도 할 말이 너무 많다. 정말 담백하게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파트 재난영화라고 생각하고 봤지만, 그렇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에서 구조헬기가 등장하고, 긴박한 뉴스 앵커의 보도 화면이 나왔다면 재미가 반감됐을 것이다. 컷 구성과 배경음악의 배치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번 여름 다양하게 쏟아지는 텐트폴 영화 중에 단연 1위고, 신선한 소재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든’ 영화라서 꼭 극장에서 만나기를 추천한다.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728x90반응형'Film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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