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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또한 책임과 한 패라는 것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1탄]Film/Movie 2023. 8. 20. 23:38728x90반응형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핵폭탄 개발 가능성이 열리면서, 상대국가 중 미국은 긴박해졌다. 어쩌면 지난하게 이어지던 전쟁의 종지부를 나치군이 찍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승전이라는 결과로. 전쟁의 패배로 지구상에는 독일과 함께 뜻을 같이 하던 전범국가들의 ‘파시즘’이 펼쳐질 것이 자명했다. 나치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펜하이머가 있다.
Oppenheimer 2023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개발을 진행하는 3년 동안,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 정부는 쇠퇴하였고 패전의 길을 걷고 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다. 지구상의 평화를 위해, 세상에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무의미하게 만들겠다던 오펜하이머가 로스 앨러모스에서 수많은 과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던 원자폭탄은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정치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바다 건너편, 얼굴도 본 적 없는 일본이란 나라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란 도시 상공으로 팻 맨과 리틀보이, 두 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어버렸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렸던 오펜하이머는 본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목표를 이룬 과학자,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애국자. 세계가 그를 그렇게 칭송할 때, 그는 생각한다. 과연 이 성공은 성공한 것인가?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중성자에 가해진 충격으로 핵이 분열되며 또 다른 중성자에 달라붙어 충격을 가한다. 그리고 그 중성자들이 또다시 핵분열과 함께 충격으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원자폭탄의 원리는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연쇄반응’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이다. 하나의 시작점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점에 첫 시작점의 결과물이 도달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 퍼져나가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Oppenheimer 2023 영화는 오펜하이머를 하나의 중성자처럼 표현한다. 오펜하이머라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든 원자들이 모인다. 로스 앨러모스라는 한정된 공간에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과학자들이 모이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전,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으로 보인다.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과 함께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의 폭발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트리니티 실험을 표현한 부분이 이 영화의 ‘첫 폭발’이 되는 것이다.
트리니티 실험 이후, 맨해튼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이 실내 체육관 같은 곳에 모여서 발을 구르며 원자폭탄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 가운데 단상으로 그들을 가로질러 가는 오펜하이머는 또 다른 폭발을 경험한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빛과 폭풍이 몰아치고, 빛보다 속도가 느린 소리가 이후에 몰아치는 폭발 장면이 또다시 이어진다. 폭탄의 ‘쾅’ 소리가 아닌 사람들의 함성이 굉음처럼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원자폭탄의 성공은 더 이상 성공이 아닌, 연쇄작용의 파편들이 되어 오펜하이머를 덮친다.Oppenheimer 2023
성공한 후에도 책임은 존재한다어떤 일이던 실패 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결과값이 실패일 때, 대부분은 ‘책임을 지고’ 실패의 짐을 떠안고 자리를 떠난다. 축구 대표님의 감독이 경질되고, 정부의 조직장이 사임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실패’ 때문이다. (실패의 고정값으로 자리를 내놓는 행위가 책임을 다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실패했다면 응당 앞서 말한 방식처럼 ‘책임’을 다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반면에 ‘성공에 책임을 묻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목표를 달성했고, 주어진 과업을 성공했다면 그것으로 끝맺을 수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미국의 젊은이들을 빠른 시일 내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더 이상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없애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목표대로 미국과 동맹국들은 전쟁에서 이겼고,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를 세계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주어진 과업을 달성한 오펜하이머에게 책임이 없었을까? 성공한 과업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거주하던, 전쟁과 상관없던 시민들이 22만 명이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상상할 수 없던 무기가 선택지에 생겼다. 전쟁은 좀 더 간편해졌지만, 손쉬운 승리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해졌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오펜하이머는 그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 성공 이후에도 책임이 필요하다. 성공이라는 폭발 이후에 발생하는 연쇄반응에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Oppenheimer 2023
성취한 결과의 대가를 직면하다3시간을 쉼 없이 달려온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처음에 등장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다시 비춘다. 그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리뷰 2편에 다루겠지만) 그 둘의 대화로 오해를 하게 되는 루이스 스토로스 제독으로 인해 오펜하이머와의 갈등이 초래한다. 그리고 그 대화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아인슈타인 : 그때 내가 만들었던 이론 (상대성이론) 이 무엇을 촉발시켰을지 아인슈타인 본인은 모를 것이라고 당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했었지. 이제 자네 차례일세. 자네가 이룬 성취의 결과에 대한 대가를 직접 대면하게 될 걸세
그 둘이 마주한 호수에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고요했던 호수에 하나, 둘. 셀 수 없는 원형의 파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오펜하이머는 “이미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된 것 같다”라고 대답한다. 성공했지만 성공의 결과와는 반대되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성공을 부정했던 학자, 오펜하이머.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내 일생에 내가 ‘성공’이라고 축하하며 곱씹어보지 않았을 연쇄반응이 있었을지 고민해 보게 된다.Oppenheimer 2023 728x90반응형'Film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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