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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실직도시 - 방준호Text/Book 2022. 9. 18. 01:31728x90반응형
지방 도시, 실직을 하다.
서울을 제외하고, 각 지역의 도시마다 그들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나 고유 대명사가 하나쯤은 존재한다. 호반의 도시 춘천, 선비의 도시 영주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도시를 소개하는데 기업의 이름이 붙는 곳들이 존재한다.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대우자동차. 한 번쯤은 들어봤을 기업 이름들로 설명할 수 있는 도시. 우리 주변에 은근히 많다. 경기도 이천은 SK하이닉스, 경기도 수원은 '삼성전자'. 전북의 도시 '군산시'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군산의 찬란한 역사는 대한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시절,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던 쌀을 일본으로 이송하기 수월한 지리적 이점으로 군산은 서해안 중부권의 통로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가 되었다. 당시 조선을 강제 침탈했던 일본의 총독 사이코 마코토는 군산항에 쌓여있는 쌀을 보며 "쌀의 군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제강점시절 군산항의 모습. 쌀 포대가 상당히 쌓여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읽었던 <실직 도시>는 군산이란 도시의 현재를 보여주며 과거를 이야기하는 '르포'형식의 에세이다. 저자인 방준호 기자는 한겨레신문사를 거쳐서 현재는 한겨레 21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9년 4월 군산이란 도시를 취재하기 위해 내려가서 6주간 체류하며 그곳에서 만난 3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주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군산 토박이들이다. 그 토박이들은 모두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직장 동료이며 선, 후배였다. 우리에겐 GM대우와 현대중공업으로 익숙한 군산. 앞서 말했듯 그 도시를 설명하는 고유 대명사가 있다면 군산에게는 GM대우와 현대중공업, 공장도시였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다.
뉴스의 한 꼭지를 숱하게 장식하는 '귀족노조', '총파업' 등 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보내 놓겠다. 과거 우리나라 정부는 새만금 간척지의 발전을 대우자동차에게 맡겼다. 90년대 재계 TOP5 내에 들었던 그룹 '대우',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의 일환으로 군산시 앞 새만금의 땅을 메우고 그곳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기업의 힘을 빌린다. 그리고 그 땅의 사용처를 기업에게 맡겼다. 바다 간척을 통한 지역 일자리 창출, 지역 불균형 발전 완화라는 타이틀은 매해 정부가 공을 들이는 분야다. 정부는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겪으로 군산을 대우에게 맡겼고, 단기적이지만 그 전략은 성공했다. 분명 해당 행정직 공무원들은 해당 공적을 치하했을 것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은 기업 총수의 부정과 그 외의 문제들로 한 순간에 사라졌다. 군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업의 생산기지로 전락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그 자리를 메꾼 것은 외국계 기업(제너럴 모터스)이었지만, 살아남은 대우에는 운영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초일류기업 GM에 값싼 노동력과 공장 부지를 대여만 해준 꼴이 되었다. 그래도 군산 '토박이'들은 그 동아줄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군산이라는 공간을 이용했던 정부, 기업은 군산시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희망이란 씨앗만 손에 건네주고 그 씨앗을 뿌리내릴 땅을 철저하게 내주지 않았다. 모두가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쉽게 뭉칠 수 없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그들이 맞서야 할 상대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려버렸다. 그 안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안아주며 살아가는 '토박이'들의 삶. <실직 도시>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군산호텔 항도에 묵으며 군산을 한 번 돌아보고 싶어 진다. 우리에겐 이성당 빵집으로만 알려져 있는 '군산'이란 도시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인스타그래머블'한 느낌의 사진들로 기록된 군산의 일본식 가옥들과 가게들 말고, 진짜 군산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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