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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단에 같이 춤 춰줄 사람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2화]Film/TV Series 2023. 6. 5. 01:26728x90반응형
# 오랜만에 만난 무해한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대외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드라마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이후 4년 만에 복귀한 배우 이나영의 작품이라는 것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대외적인 오랜만이고. 나에게는 잔잔하고 담백한 영상미와 스토리를 오랜만에 느끼게 한 귀한 드라마였다. 주인공 '박하경'이 일상에 지쳐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토요일 하루만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가 전부인 드라마. 각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단일한 주제를 담고 있는 <박하경 여행기>는 각 편마다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이지만, 여운이 오래 남고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담백한 무언가가 있다. 개인적으론 평양냉면 같은 드라마라고 평하고 싶다.
Wavve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며, 지방의 딱 한 군데를 정해서 여행하는 모습은 흡사 '고독한 미식가'와 그 결이 비슷하다. (개인적인 취향이기에 고독한 미식가가 떠오르긴 했다.) 쏟아지는 대사량 없이도, 다이내믹한 연출 없이도 충분히 관객에게 말을 걸어주는 드라마. 2화까지만 봤지만, 아직 웨이브에서 이 드라마의 장르를 #성장 #청춘으로만 단정 지었는지 모르겠다.
# 선생님이니까, 그만두라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
2화의 배경은 군산이다. (군산 관련해서는 아주 예전에, '실직도시'라는 책을 읽고 블로그에 남긴 글이 있다.)
[책] 실직도시 - 방준호
지방 도시, 실직을 하다. 서울을 제외하고, 각 지역의 도시마다 그들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나 고유 대명사가 하나쯤은 존재한다. 호반의 도시 춘천, 선비의 도시 영주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도시
aisle-seat.tistory.com
주인공 박하경이 당일 여행으로 선택한 도시 군산, 이곳에서는 선생님 박하경이 과거에 가르쳤던 제자가 '예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타로카페인지 갤러리인지 모를 공간에서 제자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에 들르게 된다. 제자의 주변에는 하나같이 무언가 하나씩 부족한 친구들이 모여있다. 모두 그녀(제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하는 '예술'이란 행위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제자의 친구 중 하나가 하경에게 말한다.
"선생님이셨다면서요? 그럼 제자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셔야죠. 제발 이제 이런 거 그만두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날 저녁, 전시회와 함께 제자는 행위예술 전시도 함께 진행한다. 좁은 갤러리에도 어느덧 남녀노소의 관람객들이 모여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연주에 맞춰, 제자는 뜻 모를 행위예술을 시작한다. 그리고, 방언처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이상하다고 말하는 꼬마 아이, 공연 중에 전화가 울려 전화받으러 나가는 남자, 그저 떡을 준다는 말에 전시를 보러 온 할아버지. 제자의 공연에 관심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
Wavve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2화, 한예리 배우가 제자역할로 등장한다 그만두라는 말을 하는 대신, 박하경은 제자의 방언에 반응을 한다. 관객들의 무반응과 멸시에 자신감을 잃던 제자 연주는 흔들리는 동공과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자신 없게 던진 한 마디에, 나를 알아줬던 선생님 하경이 대답을 해준 것이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공연을 관람하던 남자 하나가 어디선가 색소폰을 꺼내서 콘트라베이스와 어울리는 연주를 시작하고, 무반응이었던 관객들이 박수를 치다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단 한 명만 있으면 된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 명. 얕은 물결이 파도를 만들고, 모두를 물줄기에 휩쓸리게 만든다.
# 남한테 장단 맞추지 말아
코리안 그랜드마더, 유튜버 박막례 님이 본인의 채널 영상에서 했던 말이다.
"내 70년 넘게 살아보니까, 남한테 장단 맞추지 말어. 북 치고 장구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야"
그녀의 한 마디를, 영상으로 접하게 되니 더욱 힘 있게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특히 한국이란 사회는, 암묵적으로 정해져서 맞춰 춤춰야 하는 장단이 있다. 19살에서 20살 넘어갈 때, 꼭 대학을 입학해야 한다. 나이 30살쯤 되면 결혼할 사람은 한 명쯤 있어야 한다. 결혼하고 얼마 있으면 아이가 꼭 있어야 하고, 그 아이는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출 나게 뛰어난 재능이 있어줘야 한다.
인생의 큰 흐름에서도 그렇지만, 작은 것들에도 정해진 K-장단이 존재한다. 보편적인 삶에서 조금만 빗겨 나가면 이상하다고 쳐다본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식의 말이 구전동화처럼 돌아다닌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평범한 상태인 것인데, 마치 평범한 상태도 성취한 것이라도 되는 마냥, 모두를 평준화로 맞춰야만 한다. 누군가 무리에서 조금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서라도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내려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말이 그렇다.
Wavve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 불나방이라도 어때
밝은 빛이라면 나방은 어떻게든 그쪽을 향해 날아간다. 설령 그 빛이 본인을 태워버릴 불덩이라고 해도. 목표(불)를 향해 한 몸 불사르는 그들이 진정 목표지향적인 존재들 아닐까? 밝은 빛을 향해 날아가서 사라지는 나방보다,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리며 목적지 없이 날아다니다가 사라질 날벌레가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보이진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는 안락함이 평범한 삶이고,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삶인가.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은 나는, 단지 내일 출근이 늦을까 봐, 조금 덜 잤다가 피곤할까 봐 사리면서 시간만 보내는 일이 더 많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 저한테 묻지 마세요.
끝으로, <박하경 여행기> 관련 이나영 배우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런 걸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원빈 배우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농담처럼 '저한테 묻지 마세요, 알아서 나오시겠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극 중 박하경 = 이나영이 되는 순간이라고 본다. 오히려 연기가 아닌 본인을 그대로 보여준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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